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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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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대무관은 프랑스 육군에서 중요한 직위로, 샤를마뉴의 검에서 유래된 조와유즈를 직위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1191년 세네샬 직위 폐지 후 육군에서 가장 중요한 직위였으며, 국왕의 제1의전관으로서 귀족 다음의 서열을 차지했다. 콩데타블은 강력한 마레쇼를 포함한 모든 군 장교를 지휘했으며, 육군 재정 지원 및 군사 재판 관할 책임도 있었다. 역대 프랑스 대무관은 카페 왕조, 발루아 왕조, 부르봉 왕조 등 여러 왕조를 거치며 임명되었고, 나폴레옹 1세 시기에는 명예직으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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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무관장
개요
프랑스의 문장
프랑스의 문장
프랑스어Connétable de France
라틴어comes stabuli
역할왕국 프랑스의 제1 관료
상세 정보
임명자국왕
보고 대상국왕
직위 종류대관
지위왕실 장교
왕관의 주요 장교
임기종신
설립1060년
폐지1627년, 1792년, 1809년
부재1627년 ~ 1660년
첫 번째 임명자조유즈
마지막 임명자루이 앙투안 드 부르봉 콩데, 엥기앵 공작
유명한 임명자베르트랑 뒤 게클랭
역사
기원프랑스의 콘네타블 직위는 1060년경 로베르 1세 치하에서 시작되었다.
역할원래는 왕실 마구간을 관리하는 왕실 하인이었으며, 'comes stabuli'라는 용어에서 유래했다.
중세 시대 동안 프랑스 군대의 사령관이 되었으며, 국왕 다음으로 군대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휘관이었다.
프랑스 원수의 우두머리였다.
왕이 부재할 경우, 원수들이 콘네타블의 명령을 받았다.
권한콘네타블은 자신의 이름으로 군대를 소집할 수 있었다.
또한 군사 법원을 관할할 권한도 있었다.
영향력 감소콘네타블의 권한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했다. 프랑수아 1세는 그들의 권한을 더욱 제한했다.
폐지1627년 앙리 2세 드 몽모렌시가 루이 13세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후, 콘네타블 직위는 폐지되었다.
이후, 콘네타블의 군사적 기능은 프랑스 원수에게 이양되었다.
부활 시도이 직위는 짧은 기간 동안 부활되었다.
나폴레옹 1세는 그의 형인 루이 보나파르트에게 제국 콘네타블이라는 명예 칭호를 부여했다.
재창설 시도왕정복고 기간 동안 콘네타블 직위를 재창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직위가 다시 채워지지는 않았다.
권한 대행
콩네타블의 부재콘네타블의 부재 시, '대원수'가 그의 역할을 대행했다.
대원수는 프랑스 원수 중에서 가장 선임이었다.
마지막 대행프랑수아 드 본, 레디기에르 공작
마레샬 도옌프랑스 원수 중 가장 고참은 '마레샬 도옌'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들은 프랑스 원수단의 의장이었다.
마레샬 제네랄 데 캉 에 다르메 뒤 루아프랑스 원수는 '마레샬 제네랄 데 캉 에 다르메 뒤 루아'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었다.
참고
관련 문서프랑스의 군사사
프랑스의 왕실 고위 공무원
프랑스의 대(大) 콘네타블

2. 직위의 상징

프랑스 대무관의 칼, 앵발리드의 프랑스 육군 박물관 전시품


프랑스 대무관의 직위 상징은 샤를마뉴의 검에서 유래된 조와유즈였다. 조와유즈는 늦어도 1271년부터 프랑스 왕의 대관식에 사용되었으며, 세로로 백합 문양이 장식된 파란색 칼집에 보관되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대무관은 왕으로부터 이 칼을 받았다.

2. 1. 조와유즈

프랑스 대무관의 직위 상징은 전설적인 샤를마뉴의 검에서 유래된, 매우 정교한 칼인 조와유즈였다. 조와유즈는 여러 검의 조각으로 만들어졌으며, 늦어도 1271년부터 프랑스 왕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다. 그것은 자루에서 칼끝까지 세로로 백합 문양이 장식된 파란색 칼집에 보관되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대무관은 왕으로부터 직무를 수행할 때 이 칼을 받았다.

3. 권한

1191년 세네샬 직위가 폐지된 후, 육군에서 가장 중요한 직위는 콩데타블이 되었으며, 국왕의 제1의전관으로서 그는 귀족 바로 다음의 의전 서열을 차지했다. 그는 왕국 내에서 국왕의 중장 지위를 가졌다. 콩데타블은 강력한 마레쇼를 포함한 모든 군 장교를 지휘했으며, 육군 재정 지원 및 군사 재판 관할 책임도 있었다. 관할 구역의 공식 명칭은 ''la connétablie''(콩데타블리)였으며, 그는 마레쇼 드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이 권한을 행사했다. 이는 당시 잉글랜드에 존재했던 기사법정의 ''curia militaris''라고 불린 경호법정과 유사했다.

4. 프랑스 대무관의 부하


  • 프랑스 원수(Maréchal de France)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국왕의 결정에 따라 국경 공작보다 상위 계급이 될 수 있었다.[4]
  • 연대 총장(Colonel-general)은 왕립 프랑스 육군 내 특별한 지위로, 기병대, 용기병, 보병 등 동일 병과의 모든 연대를 지휘했다.[4]
  • 장군(General officer)[4]
  • 중장(Lieutenant-general)은 프랑스 육군의 정규 장교 계급 중 최고위 계급으로, 혈통이 아닌 근속 연수와 공훈을 바탕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4]
  • 야전 원수(Maréchal de camp) (문자 그대로 '(군) 야전 원수')는 야전 원수(Field Marshal)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최하위 장군 계급으로, 후대에 ''Major-général''로 개칭되었으며, 오늘날의 여단장(général de brigade)과 동등하다.[4]
  • 오리플람 기수(Porte-Oriflamme)는 군 계급이 아닌 명예로운 직위로, 국왕의 왕실 깃발을 전투에 들고 갈 권한을 부여했다.[4]
  • 궁술대장(Grand Master of Crossbowmen) (Grand-Maître des Arbalétriers du Roi)은 육군의 모든 궁수를 담당했다.[4]
  • 포병대장(Grand Master of Artillery) (Grand-Maître de l'Artillerie royale)은 17세기 초부터 프랑스 왕관 대관(Great Officers of the Crown of France)이 되어 국왕의 직속 부하가 되었으며, 더 이상 국경 공작의 지휘를 받지 않았다.[4]

5. 역대 프랑스 대무관

프랑스 대무관장의 재임 기간 중 날짜가 연속되지 않는 이유는 정부 및 주교의 행위에 대한 기록이 불완전하거나, 과도기 동안 다른 관리나 익명의 대리인이 임시로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대무관장의 역할이 완전히 비워지거나 채워지지 않은 적은 없다는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드뢰 백작 발드릭은 치명적인 감염병에 걸려 수도사가 되었으나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발드릭 또는 상원집정관이 대리인을 임명했고, 발드릭은 병에서 회복된 후 대무관으로서 평생의 임무를 다시 시작했다.[5]

5. 1. 카페 왕조

이름재임 기간
드뢰 백작 발드릭1043년 5월 20일~1069년[5]
발드릭의 대리인, 월터1048년[5]
발드릭의 대리인, 알베릭1060년
고티에1069~1071년
아델름1071~1075년
아담 르 일1075~1085년
몽모렌시 영주 티보1085~1107년
가스통 드 샹몽1107~1108년
위그 르 보르뉴 드 샹몽1108~1135년
마티외 드 몽모렌시1138~1160년
시몽 드 뇌플르-르-샤토1165년~?
라울 1세 드 클레르몽1174~1191년
드뢰 4세 드 멜로1194~1218년
마티외 2세 르 그랑, 몽모렌시 남작1218~1231년
아모리 드 몽포르1231~1240년
위베르 5세 드 보제1240~1250년
질 드 트라시니1250~1276년
위베르 6세 드 보제1277년
라울 2세 드 클레르몽1277~1302년
고셰 5세 드 샤티용1307~1329년


5. 2. 발루아-앙굴렘 왕조

부르봉 공작 샤를 3세(1490–1527)는 1518년부터 1523년까지 프랑스 대무관장을 역임했다.[1] 앙 드 몽모렌시(1492–1567)는 1538년부터 1567년까지 프랑스 대무관장을 역임했다.[2]

5. 3. 부르봉 왕조


  • 앙리 1세 드 몽모렌시 (1534–1614), 1593–1614년 재임
  • 샤를 다르베르, 뤼이네 공작 (1621), 1621년 재임
  • 프랑수아 드 본, 레디기에르 공작 (1543–1626), 1622–1626년 재임

6. 프랑스 제1제국

통령 정부 (1799–1804) 시기에, 폐위된 부르봉 왕가는 아르투아 백작을 통해 당시 공화국의 제1통령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부르봉 왕가를 프랑스 왕으로 복위시키면 "프랑스 대무관장" 직위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보나파르트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1808년, 황제 나폴레옹 1세 (1804년부터)는 직접 프랑스 제국의 대관을 임명했는데, 그중에는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 (1806년 형의 결정에 따라 네덜란드 국왕)를 '''대무관장'''으로, 제국 원수이자 프랑스 육군 참모총장이며 뇌샤텔 공작인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를 '''부대무관장'''으로 임명했다. 두 직위 모두 순전히 명예직이었으며, 나폴레옹 정권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다.

7. 대중문화

프랑수아 비옹(로널드 콜먼 분)이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바실 라스본 분)에 의해 일주일 동안 프랑스 대무관으로 임명되는 내용을 다룬 영화 ''내가 만약 왕이라면(If I Were King)'' (1938년)이 있다.

샤를 6세에 의해 임명되어 아쟁쿠르 전투(1415)에서 사망한 대무관 샤를 달브레를 묘사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는 여러 영화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 1944년 영화: 레오 젠이 연기, 헨리 왕과의 개인적인 전투에서 사망.
  • 1989년 영화: 리처드 이스턴이 연기, 말에서 떨어져 진흙에 빠지는 모습으로 묘사 (역사적 전통에 따르면 갑옷 무게 때문에 진흙에 빠져 익사).
  • 2012년 영화: 막심 르프랑수아(Maxime Lefrancois)가 연기, 주요 전투에서 벗어난 숲 속에서 요크 공작의 등을 찌른 후 장궁 사수에게 총을 맞음.

참조

[1] 서적 Le petit Larousse 2013
[2] 서적 The Complete Book of Heraldry Lorenz
[3] 웹사이트 Great Officers of the Crown http://www.heraldica[...]
[4] 서적 Le petit Larousse 2013
[5] 서적 Domesday DNA Domesday DNA
[6] 서적 Charles the Bold Boydell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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